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 '새로운 자유의 탄생' composition



<게티즈버그 전투 사진> 

게티즈버그는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북군과 남군 합쳐 16만 명 이상이 참전해 5만여 명이 전사했다. 전투 현장에 지어진 국립묘지에서 링컨은 개관 기념 연설을 했다. 그러나 링컨은 주 연설자가 아니었다. 당대의 명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 국무장관이 주 연설자였다. 에버렛은 링컨에 앞서 2시간이 넘게 연설했다. 에버렛은 나중에 편지를 보내 “대통령께서 2분 동안 한 것처럼 저도 2시간 동안 개관 행사를 빛나게 할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고백했다.


 


<아브라함 링컨(좌) 에드워드 에버렛(우)>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세계 역사의 고비 때마다 다시 등장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의 첫 머리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는 100년 전 게티즈버그에서 연설한 링컨을 지칭한다. 프랑스 헌법(1958년 제정)은 프랑스공화국의 설립 원칙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규정했다. 버락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우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바마의 정치 인생 멘토인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은 272개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한 문장 속에 민주주의 이념을 압축했다. 국민의 민주정부 수호 의무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헌신 의지를 담았다. 남북전쟁은 국가 통합을 위한 싸움이자 자유의 재탄생 과정으로 규정된다. 이를 위해 링컨은 연설을 게티즈버그라는 싸움터에서 시작하는 대신 미국이란 나라의 탄생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만큼이나 혹독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미국을 탄생시킨 독립선언서의 자유와 만인 평등이라는 원칙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이다.


링컨은 미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정적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내각에 끌어들였다. 그래야 흑인 노예 제도를 놓고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링컨의 내각을 ‘라이벌 팀’이라고 할 정도였다. 링컨의 리더십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 독립 이후 뜨거운 감자였던 노예 문제를 해결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전문(한글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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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Jeff Daniels가 녹음한 게티스버그 연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 뙈기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축성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혹은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 것 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 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미완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 데 헌납되어야 하 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큰 과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연설의 배경>


미국 남북전쟁(1861~65)이 진행되고 있던 1863년 11월19일, 링컨은 전쟁의 전환점이 된 혈전지 게티스버그(펜실베이니아 주)를 방문하고 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 참석한다.

그 식전에서 그는 불과 2분간의 짧은 연설을 행하는데, 그것이 이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원문으로 총 266 단어의 이 연설문은 다음날 게티스버그 신문에 실리고 미국사의 기념비적 텍스트의 하나로 전해지게 된다.

이 연설문은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링컨에 앞서 두 시간 연설했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이 『나는 두 시간 연설했고 당신은 2분 간 연설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두 시간 연설이 묘지 봉헌식의 의미를 당신의 2분 연설처럼 그렇게 잘 포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는 것도 그런 일화의 하나이다.

링컨이 게티스버그로 가는 열차 안에서 편지 봉투 겉면에 서둘러 쓴 것이 이 연설문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화이기보다는 만들어진 전설이다.

링컨이 신임했던 기자 노아 브룩스(Noah Brooks)에 따르면 봉헌식 며칠 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통령이 『연설문을 초안했으나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링컨의 성격, 연설문이 지닌 고도의 짜임새, 어휘 선택과 수사적 구도 등을 보면 이 연설문은 한 순간의 영감 어린 작품이기보다는 링컨이 상당한 시간을 바쳐 조심스레 작성한 문건이라는 판단을 갖게 한다.

 

<게티즈버그 연설 필사본 5개 중 하나로 이는 비서였던 Hay에게 준 연설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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